안녕하세요. 지난 글에서는 제가 어떻게 건축분야에 취업이 되었는지 말씀드렸었는데요.
많은 분들, 특히 한국에서 훌륭한 경력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단지 영주권이라는 절대절명의 목표 아래 그 좋은 경험과 기술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신 듯 하여 조심스레 저의 경험과 생각을 몇자 적어보겠습니다.
저역시 20년 넘게 한국에서 건축을 하다 보니 컴퓨터 그래픽에서 부터 디자인, 시공, 목수, 잡일(?),공무, 건축 상담 등등 다른 모든 한국분들과 마찬가지로 멀티플레이어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의 취업문을 두드렸을때 캐나다에서는 저의 이런 경력을 알아주지 않았죠. 결국은 학교를 다시 입학하고, 다시 졸업하고, 엔트리 레벨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자존심 상해..
솔직히 처음 취업할때는 취업된것이 어디냐~ 하면서 마냥 기뻤지만 한국에서보다 쪼그라든 연봉, 한국에서는 제일 위에서 결정권자로서의 위치였는데 여기선 제일 쫄다구, 제 나이또래 캐네디언들은 전부 임원이나 디렉터급인데, 회사 하이러키 구조에서 보면 제일 밑바닥.... 뭐 이래저래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도 남들에 비하면 운이 좋은 케이스라 같은 한국 사람끼리 모여도 내색한번 못내고, 조심스럽고 그랬었죠.
스스로 회사를 다니면서도 조금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영어도 이건 뭐 학교에서 쓰는 영어환경은 그나마 저의 환경을 배려한거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메일로, 전화로, 회의에서 실시간으로 결정이 내려지고 그결정을 결과물로 만들어내야 하는 일터 에서는 정말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니 이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네요.^^;
여튼, 이러이러한 이유로 내가 왜 캐나다에 왔나.. 차라리 영주권 리젝이나 당해라.. 그 핑계로 돌아가게.. 그정도 스트레스가 항상 절 따라다녔죠.
빛을 발하다.. Photoshop
하지만, 의외로 엉뚱한 곳에서 제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사건들은 꽤 자주 터졌습니다.
어느날 부서장이 포토샵 할 수 있는 사람있으면 도와 달라는 긴급 공지가 떴더라구요.
저희 회사의 경우 건축 도면 및 프리젠테이션용 렌더링 이미지 (조감도 같은 부동산 광고 보면 이쁜 건물 그림들이에요)는 전부 외주 작업 입니다. 그런데 아주 이례적(?)으로 내일까지 새로지어지는 건물의 외장재 컬러를 바꿔서 프리젠테이션 해야 하는데 그 외주 작업팀이 못한다고 했나 봅니다. 당연하죠.. 여긴 캐나다 인걸 ~ ㅋㅋㅋㅋ.
내용을 보니 어언 15년전 포토샵으로 한창 날리고 있던 시절 매일 하던 작업이더군요. 물론 앞에 잎사구 많은 나무가 있어서 좀 까다롭긴 했지만, 그냥 제가 도와 줄수 있으니 원본 화일 보내 달라고 했죠. 어차피 포토샵 같은 소프트웨어는 전세계 공통이니까 뻔에 뻔자였죠.. 한시간정도 새로운 버전 적응기간 마친 후.. 한국에서는 평범, 여기서는 미친듯한 속도로 수정해서 보내주고, 한국적인 마인드(?)로 수정대기중이니 필 프리~ 어쩌구 저쩌구를 마구 날렸죠.
여튼 이일이 있고난 후, 그 수많은 직원들 중 회사에 포토샵으로 렌더링 이미지를 수정할줄 아는 사람이 저와 우리팀 총괄디자인 매니저 딱 두명이란 사실을 알았죠. 요즘도 아주 가끔 엄청 엄청 쉬운 이미지 프로세싱 작업을 엄청나게 어려운척 하면서 해줍니다.
빛을 발하다.. 3D
또 한가지 예로, 원래 한국에서 건축 하는 사람은 거의 전부 캐드, 레빗, 각종 쓰리디 프로그램 한두개, 렌더링 소프트웨어 한두개 정도는 기본입니다.
새로운 건물 예산 을 짜기 위해 회의를 하던중 매니저가 갑자기 클라이언트가 도면을 못읽는 다고 어떻게 쉽게 설명할 방법 없을까? 하던중 저에게 물어 봅니다. 예전 너 인터뷰 할때 너가 보여준거 그거 스케치업으로 만들었다고 했지? (스케치업은 건물을 입체적으로 설계할 수있는 쓰리디 프로그램 입니다. ) '그거 해보면 안될까?' "눼눼... 일주일만 주십쇼 똑같이 맹길어 드리겠습니다" 심심해서 건물 주위 구글 지도 보고 똑같이 만들어 현장감 살려주고 하니까.. 다들 신기해 하며 즐거워 보였습니다.
한국에서 건축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제가 그분들과 비교하여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남들과 차별이 되는 곳이 바로 이곳 캐나다 입니다.
제가 저러한 기술로 아직 실질적인 득을 본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큰 프로젝트할 때 저에게 직접 찾아와서 이러이러한 것을 구현하고 싶은데 가능하냐? 앞으로 회사에서 모든 건축물을 디지털화 할 예정인데 어떤 소프트웨가 좋냐.. 뭐 그런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가 어떻든 그런 대화를 이어나간다는 것은 위에 말한 저의 무료함에 단비 같은 일이 되면서 또한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합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까지 구축하고, 터득해온 여러분만의 경험과, 지식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해서 입니다. 구직할때에는 한국의 경력을 인정해 주기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경력 있으신분들은 취업문을 통과한 후 그 경력을 이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있으리라 봅니다.
캐나다 이민 글들을 읽어 보면 단골 멘트가, "한국에서 교수 하던 사람, 대기업 다니던 사람도 여기서 최저임금 받으며 몸 쓰는 일 한다." 입니다.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겠지만, 은연중에 "너가한국 에서 뭐가 됐든 여기오면 밑바닥부터 기어야돼.." 라는 말로 들기도 합니다. 캐나다 이민 사회가 군대도 아니고...
한국에서 직장경험이 없으신 젊은 분들은 또 다를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의 경험이 많으신분들의 경우, 자신의 전공을 찾아 제일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약간은 돌아갈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본인도 행복하고 캐나다사회에서도 인정받는 방법으로 이민 생활을 계획 했으면 하는 바램에 주제 넘게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